주차장 (1969)
주차장 (1969)
https://www.kmdb.or.kr/db/kor/detail/movie/K/01938
- 감독: 김수용
- 각본: 나소원
- 촬영: 홍동혁
- 출연: 윤정희 (문정음), 최무룡 (한동규), 이낙훈 (기자 A), 홍성우 (기자 C), 정민 (동규의 장인)
[1]
아마도 최무룡-윤정희의 첫 공연작.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하게 그려지는데 우리는 여성 심리물로 받아들이고 꽤 재미있게 봤다. "영화TV예술" 69년 4월호에 시나리오가 실려있는데 거기는 문 선생의 환상의 시작과 끝이 비교적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.
영화는 초반에 문 선생이 교통사고를 당한 뒤에 오프닝 크레딧이 나오는데, 이 뒤는 전부 그녀의 몽상이고 한동규는 실재하지도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. 여주인공 이름이 계속 문 선생이라고만 나오다가 거의 결말에 가서 정미라고 하는데 좀 있다가는 정음이라고 한다 (시나리오 상에는 정음이다. 정미는 우리가 잘못 들은 건지도 모르겠다). 한동규의 자동차 번호는 분명히 2799였고 심지어 굳이 기자 C 입을 빌어서 9땡 운운하는 대사까지 나왔는데 한동규가 키 잃어버린 뒤에 나오는 번호는 2692라고 한다. 이게 컨티뉴이티 에러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 분위기가 묘해서 문 선생의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것이거니하고 관대하게 보게 된다.
문 선생은 서른 살 넘은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자신이 아무 쓸모도 매력도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걸 두려워했던 게 아닐지. 동규 집에 형사가 찾아오기 직전 장면에서 그게 적나라하게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는 동규도 문선생도 다른 장면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.
[2]
최무룡은 입을 열었다 하면 뭔 x소리야 싶은 소리만 하는 출판사 문화 부장 한동규 역인데 그 x소리들을 너무 경쾌하게 하는 섹시한 쾌락주의자 캐릭터다. 사무실에서 기자 A의 부인에게서 걸려온 전화 처리하는 솜씨도 일급이었다. 샤워 장면 직전에 아연했는데 "샤워할 수 있지?"라는 대사를 너무 태연하게 잘 해서였다. 샤워 장면도 그렇고 시나리오만큼 노골적인 장면은 없는데 하여간 이 영화의 최무룡은 정말 섹시하다.
[3]
<아카이브 프리즘> #4 봄호, '인터뷰 이슈'에 실린 김수용 감독 인터뷰 중에서 이 영화에 대한 언급이 잠깐 나온다 (259-260쪽). 아시아 영화제 출품용으로 시간에 맞추느라고 급하게 만들었고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하는데, 최무룡의 연기에 대해 감정 처리가 정확하다는 표현을 한다 ("최무룡 씨가 연기 잘하죠? (…) 최무룡 씨만큼 감정 처리가 정확하고, (…) 그이는 참 연기의 산신령이에요. 그런 분이었어요. 난, 이 최무룡 씨가 아쉬워요. 굉장히 연기 잘하는 사람이에요."). 이순재 배우가 했던 말과 일맥상통한다.
[4]
https://www.kmdb.or.kr/db/kor/detail/movie/K/01938/own/videoData
에 따르면 현재 남아있는 듀프네거티브 흑백, 릴리스 프린트 흑백이라고 되어 있는데, 당시 광고에서는 총천연색이라고 하고 심의서류에도 칼라라고 되어 있다. 어찌된 일인지. 지금 영상도서관 VOD는 흑백이다. 이 영화 분위기에는 흑백이 더 어울리긴 한다.
[5]
제작사가 극동인데 한동규가 자동차 세워놓는 목재상 이름이 극동목재상. 최무룡이 낚시광으로 유명했는데 낚시 장면이 나와서 좀 웃었다. 사실 최무룡이 언제부터 낚시를 취미로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시나리오에는 낚시가 아니라 사냥 장면으로 되어 있다. 남녀 주인공이 함께 쓰는 우산에 그려진 그림이 [One Hundred and One Dalmatians] (1961)인 건 무슨 조화인지. 저 영화 우리나라에서 개봉은 했었나.